예순을 앞두고 시작한 컬러링,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다시 만나다
캔바를 처음 열었을 때만 해도 ‘디자인’이라는 말이 나와는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을 하며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컴퓨터 앞에 앉아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본다는 것이 낯설었다. 그런데 어느 날 컬러링 그림에 색을 하나씩 입혀보기 시작하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기억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처음 색칠했던 그림은 정원 한가운데 앉아 차를 마시는 여인이었다. 곁에는 커다란 공작새가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공작새의 깃털에 파랑과 초록을 하나씩 겹쳐 칠하다 보니 문득 어린 두 딸의 모습이 생각났다.
아이들이 크레파스를 쥐고 방바닥에 엎드려 그림을 그리던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아이들 곁에 오래 앉아 있지 못했다. 저녁을 준비하고 빨래를 개고 집안일을 하느라 늘 바빴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어떤 색을 좋아했는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는지 조금 더 천천히 바라봐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색을 칠하다 보니 떠오른 아이들의 얼굴
분수대가 있는 그림을 색칠할 때는 큰딸을 목욕시키던 저녁이 떠올랐다.
물장구를 치며 웃던 아이의 목소리와 욕조에서 들리던 물소리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장미와 백합이 가득한 정원을 색칠할 때는 작은딸이 화단 앞에 쪼그려 앉아 꽃 이름을 하나씩 묻던 모습이 생각났다.
색연필을 쥔 손끝에서 오래전 기억들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그때는 힘들게만 느껴졌던 순간들도 시간이 지나고 나니 모두 소중한 추억이 되어 있었다.
아직 색칠하지 않은 그림에도 이야기가 있다
요즘은 완성된 컬러링 그림뿐 아니라 아직 선으로만 남아 있는 밑그림도 직접 만들어보고 있다.
올리브나무 아래에서 부엉이와 함께 앉아 두루마리를 읽는 여인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오래된 사진첩이 떠오른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찍어둔 사진들 사이에도 채우지 못한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언젠가 이 그림에 색을 입힐 때는 그때 하지 못했던 이야기까지 함께 채워보고 싶다.
최근에는 천사와 요정이 정원에서 마주 앉아 차를 나누는 그림도 만들었다.
두 사람의 손끝이 살짝 맞닿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딸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저렇게 다정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아직 색이 입혀지지 않은 작은 손끝에 어떤 색을 칠할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늦게 시작했지만, 그래서 더 소중한 시간
완성한 컬러링 페이지를 프린터로 뽑아보던 날, 종이 위에 내려앉은 색을 한참 바라봤다.
‘그때 아이들과 함께 이런 그림을 그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조금 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이라도 그 시절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묘한 위로를 받았다.
요즘은 직접 만든 컬러링 페이지를 하나씩 Etsy에도 올리고 있다.
누군가가 내 그림을 받아 색을 칠하고, 그 과정에서 잠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예순을 앞두고서야 알게 되었다.
아이들의 어린 시절은 이미 지나갔지만, 그때의 기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색 하나를 고르고 선 하나를 따라가다 보면 오래전 아이들의 얼굴이 다시 떠오른다.
조금 늦었지만 괜찮다.
지금이라도 그 시절을 다시 바라보고, 내 손으로 한 장씩 그려나갈 수 있으니까.
오늘도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그 시절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선 하나를 긋는다.
그리고 그 선 위에 천천히 색을 입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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